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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건국 - 위례성

대상승 2016. 11. 8. 07:32

백제의 건국 - 위례성 




미추홀이 토지가 습하고 물맛이 짜서 살 수 없자, 비류는 후회 끝에 죽고

그 백성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고구려에 올 때 백성이 즐겨 따랐다 하여 국호를 백제로 고쳤으며, 그 세계가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부여로 성을 삼았다.


그리고 나서 김부식은 그와는 좀 다른 내용의 기사를 연달아 소개하면서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고 주를 달아 놓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졸본 연타발의 딸 소서노가 우대에게 시집과 비류와 온조를 낳았는데, 우대가 죽은 뒤 주몽이 부여에서 와 고구려를 세우고 

소서노를 왕비로 삼았다. 고구려 건국에 소서노의 내조가 자못 컸으므로, 주몽의 총애가 두텁고 두 아들을 친 자식처럼 대했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때 예씨에게서 난 아들 유리가 찾아와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생모를 모시고 남으로 가 따로 나라를 세웠다 하니, 어느 것이 옳은지 모르겠다.


이 설화는 고구려의 한 세력이 남하하여 지금의 서울 지역에 정착, 백제를 건국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초기의 백제는 마한의 여러 소국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그때 마한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것은 목지국 이었다. 목지국은 성환, 직산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으나, 백제의 세력이 커지자 나주로 옮겨가 

4세기 후반 근초고왕 때 백제에 병합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