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스카 문화를 만든 백제 3편




백제는 불교뿐 아니라 글자와 유학도 가르쳐 주었다. <일본서기>에는 오진천황 15년 백제에서 아직기와 왕인이 논어와 천자문을 갖고 와 태자의 스승이 되었으며, 

아직기는 기록을 담당하는 '사'의 시조가 되고, 왕인은 문서를 담당하는 '서수'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 최초로 문자와 유교사상이 소개된 것이다.


백제는 그후에도 513년 오경박사 단양이, 고안무, 유귀, 마정안 등을 보내 유학을 가르쳤다. 오경박사란 다섯가지 유교 경전을 통달한 사람을 말한다.


유교와 더불어 의학, 역학, 천문, 지리, 점술, 각종 기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농업 기술자들은 저수지를 파고 관개시설 하는 법을, 재봉 전문가들을 옷 만드는 법을, 제철 기술자들은 무기와 농기구 만드는 법을, 금은 세공기술자들은 세공기술을 가르쳤다. 이들은 일본에 정착하여 살면서 대대손손 그 일을 가업으로 삼았는데, 이를 '귀화인'이라고 부른다. 9세기에 편찬된 <신찬성씨록>을 보면, 한반도나 중국에서 귀화한 서씨가 무려 326개 성씨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일찍이 일본에 건너간 삼국 시대인들의 자취는 지금도 일본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에는 백제왕 신사, 백제사, 고려사처럼 삼국의 흥망사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것도 있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하자, 많은 유민들이 일본으로 건너왔다. 백제왕 신사와 백제사는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의 아들 용의 증손 경복이 지은 것이다.

백제 왕가의 후예들은 일본 왕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으며, 일본 최고의 귀족 집안인 후지와라 씨와 통혼 했다.

간무 천황의 생모는 그 후손이다. 


고구려 유민들은 이른바 동국 7국, 지금의 관동지방에 정착해 살았다. 지금은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가 들어서 있는 일본의 중심지이지만, 

당시만 해도 무성한 원시림과 짐승들이 우글거리는 미개척지였다. 고구려인들은 원시림을 개척, 옥토로 만들고 꿀벌치기와 양잠을 해서 명주를 짰다.

이들 고구려 이주민의 지도자였던 약광 장군을 모신 곳이 바로 고려신사이다. 현재 동경 서북 53km 지점에 있는데 근처에는 고려역, 고려천, 고려산 등 고구려 이름을 딴 지명이 많다.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전 찬란히 꽃피웠던 아스카 문화, 일본인들은 아스카 문화를 일본문화의 고향이라 부른다. 그 아스카 문화를 일으킨 이들이 바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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